삼엽충은 왜 멸종했을까? 2억 7천만 년을 살아남은 생물의 최후
삼엽충은 고생물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생물입니다.
납작한 몸과 여러 개의 마디, 단단한 외골격을 가진 모습 때문에 화석으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삼엽충이 아주 잠깐 번성했다 사라진 생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엽충은 약 5억 2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에 등장해 약 2억 5,200만 년 전 페름기 말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은 지금까지 약 2만 2천 종 이상의 삼엽충이 알려져 있으며, 이들이 약 2억 7천만 년 동안 지구의 바다에서 살아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삼엽충은 왜 결국 완전히 멸종했을까요?
삼엽충은 어떤 생물이었을까?

삼엽충은 절지동물에 속하는 해양생물입니다.
이름의 ‘삼엽’은 몸이 세 부분으로 나뉜다는 의미에서 붙었습니다.
몸 가운데를 따라 이어지는 중앙 부분과 양옆의 두 부분이 합쳐져 세 개의 세로 영역처럼 보입니다.
머리에는 눈이 발달한 종류도 있었고 몸 전체는 단단한 외골격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종류에 따라 형태도 매우 다양했습니다.
바다 밑바닥을 기어 다니는 종류가 있는가 하면 물속을 헤엄치는 종류도 있었고, 작은 유기물을 먹거나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종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미스소니언에 따르면 삼엽충 중에는 길이가 1mm 정도인 작은 종류부터 약 60cm에 달하는 대형 종류까지 존재했습니다.
즉 삼엽충이라는 이름 아래 상당히 다양한 생물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삼엽충은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삼엽충은 약 5억 2천만 년 전 캄브리아기 초기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2억 5,200만 년 전 페름기 말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약 2억 7천만 년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비교를 위해 생각해 보면 비조류 공룡이 등장한 시점은 약 2억 3천만 년 전이고, 약 6,600만 년 전 대멸종까지 대략 1억 6천만 년 이상 번성했습니다.
삼엽충은 그보다도 훨씬 긴 시간 동안 지구의 바다에 존재했던 셈입니다.
따라서 삼엽충을 단순히 원시적인 생물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여러 차례의 기후변화와 생태계 변화를 견뎌낸 매우 성공적인 동물군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처음부터 계속 번성했던 것은 아니다
삼엽충은 오랜 기간 존재했지만 2억 7천만 년 동안 계속 전성기를 누린 것은 아닙니다.
가장 다양한 삼엽충이 등장한 시기는 비교적 초기인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였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대멸종과 환경 변화가 발생하면서 삼엽충의 다양성은 점차 감소했습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은 삼엽충의 수와 다양성이 멸종하기 전 약 1억 년 이상에 걸쳐 지속적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합니다.
즉 페름기 말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삼엽충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여러 차례 큰 충격을 받은 끝에 마지막 소수의 계통만 남은 상태에서 최종적인 대멸종을 맞은 것입니다.
첫 번째 큰 위기, 캄브리아기 말
삼엽충은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차례의 생태계 변화를 겪었습니다.
캄브리아기 말에는 상당한 규모의 멸종 사건이 발생해 초기 삼엽충 집단 가운데 많은 종류가 사라졌습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은 캄브리아기 말의 멸종 사건에서 당시 해양생물의 상당 부분과 여러 삼엽충 계통이 사라졌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삼엽충 전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살아남은 삼엽충들은 다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고, 이후 오르도비스기에 매우 다양한 종이 등장했습니다.
오르도비스기 대멸종도 살아남았다
약 4억 4,700만 년 전에는 지구 역사상 대표적인 5대 대멸종 가운데 하나인 오르도비스기 말 대멸종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지구는 급격하게 냉각됐고 거대한 빙하가 발달했습니다.
해수면도 크게 낮아졌습니다.
얕은 바다에 살던 수많은 해양생물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삼엽충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스미스소니언은 오르도비스기 말 대멸종 당시 지구 냉각과 빙하 형성, 해수면 하강으로 삼엽충을 포함한 많은 해양생물이 멸종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삼엽충 전체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일부 계통이 살아남았고 실루리아기에 다시 다양한 환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데본기에는 또다시 큰 위기를 맞았다
시간이 지나 약 3억 8천만 년 전 전후의 후기 데본기에도 여러 차례의 멸종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바다의 산소 농도가 크게 낮아지는 해양 무산소 현상이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됩니다.
특히 산호초 생태계가 크게 붕괴했습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따르면 데본기 말의 프라스니안-파메니안 멸종 사건으로 산소가 부족한 바다가 확산되면서 많은 산호초가 사라졌고, 이를 서식지로 사용하던 삼엽충 역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삼엽충의 다양성은 크게 줄었습니다.
결국 한 계통만 살아남았다
데본기 대멸종 이후 상황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과거에는 대멸종 이후 여러 삼엽충 계통이 살아남아 다시 다양하게 분화했습니다.
하지만 데본기 이후에는 Proetida라는 한 계통만이 석탄기와 페름기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은 데본기 이후 Proetida만이 살아남아 석탄기와 페름기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한때 수많은 종류가 바다 곳곳을 차지했던 삼엽충이 이제는 매우 제한적인 계통으로 축소된 것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얕은 바다와 산호초, 깊은 바다 등 여러 환경으로 퍼져 살아남았습니다.
물고기와 새로운 포식자의 등장이 영향을 줬을까?
삼엽충의 장기적인 쇠퇴 원인 가운데 하나로 포식자의 변화도 거론됩니다.
초기 캄브리아기의 바다에도 아노말로카리스와 같은 포식자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다양한 포식성 생물이 등장했습니다.
특히 데본기는 흔히 ‘물고기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어류가 번성했습니다.
스미스소니언의 고생물학자 Brian Huber는 삼엽충 다양성 감소에 영향을 준 요인 가운데 하나로 물고기를 비롯한 더 크고 효율적인 포식자의 증가를 언급했습니다.
단단한 외골격과 가시를 발달시키는 것은 삼엽충에게 훌륭한 방어 수단이었지만 새로운 포식자들도 함께 진화했습니다.
다만 포식자의 증가만으로 모든 삼엽충의 쇠퇴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 역시 삼엽충의 장기적인 감소에는 포식자 증가와 환경 변화, 여러 차례의 대멸종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합니다.
삼엽충에게 결정타가 된 페름기 대멸종
마지막 결정타는 약 2억 5,200만 년 전 찾아왔습니다.
바로 페름기 말 대멸종입니다.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은 지구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대멸종으로 평가됩니다.
이 사건은 흔히 ‘대멸종의 대멸종’ 또는 Great Dying으로 불립니다.
스미스소니언은 이 사건으로 삼엽충 전체가 사라졌으며, 당시 대부분의 해양생물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수억 년 동안 수많은 위기를 견딘 삼엽충도 이번에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페름기 대멸종은 왜 일어났을까?
현재 가장 유력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지금의 시베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초대형 화산활동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용암 분출이 장기간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가 대기로 방출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미스소니언은 페름기 말 대멸종의 주요 원인으로 시베리아의 거대한 화산활동과 이에 따른 지구 온난화 및 대기 환경 변화를 제시합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 역시 시베리아 지역의 대규모 화산활동으로 많은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면서 지구 기온이 상승한 것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고 설명합니다.
기온이 상승하면 바닷물 역시 따뜻해집니다.
따뜻한 물은 차가운 물보다 산소를 적게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바닷속 산소 부족 문제가 심해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해양 산성화와 해양 순환 변화 등 여러 환경 변화가 함께 발생했을 것으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삼엽충을 포함한 해양생물들에게는 치명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왜 삼엽충은 마지막 대멸종을 넘지 못했을까?
삼엽충이 페름기 말에 갑자기 약한 생물이 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미 그 이전부터 다양성이 크게 줄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에는 수많은 삼엽충 계통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갔습니다.
한 지역이나 특정 생태계가 무너져도 다른 계통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페름기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이미 삼엽충의 계통은 극도로 축소된 상태였습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따르면 페름기에 살아남아 있던 마지막 삼엽충들은 대부분 얕고 따뜻한 열대 바다에 분포했으며, 이러한 환경적 제한이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국 장기간 이어진 다양성 감소와 마지막 대멸종의 극단적인 환경 변화가 겹치면서 삼엽충의 역사가 끝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삼엽충은 공룡과 함께 살았을까?
삼엽충과 관련해 자주 생기는 오해 중 하나입니다.
삼엽충은 공룡과 함께 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삼엽충이 사라진 시점은 약 2억 5,200만 년 전 페름기 말입니다.
반면 최초의 공룡은 그보다 이후인 트라이아스기에 등장했습니다.
즉 삼엽충이 완전히 멸종한 이후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고, 시간이 더 흐른 뒤 공룡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삼엽충 화석과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공룡 화석이 같은 시대의 지층에서 발견되는 일은 없습니다.
현재 살아 있는 삼엽충이 있을까?
현재 살아 있는 삼엽충은 없습니다.
페름기 이후 지층에서는 삼엽충 화석이 발견되지 않으며, 깊은 바다 어딘가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과학적 증거도 없습니다.
투구게나 등각류처럼 삼엽충과 비슷하게 생긴 현대 동물이 있어 혼동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삼엽충이 살아남아 변화한 동물이 아닙니다.
비슷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외형이 어느 정도 비슷해졌을 뿐 서로 다른 동물군입니다.
삼엽충 화석이 많은 이유
이미 멸종한 동물인데도 삼엽충 화석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상당히 흔하게 발견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아주 오랫동안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삼엽충은 약 2억 7천만 년 동안 세계 여러 바다에 퍼져 살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단단한 외골격입니다.
부드러운 몸을 가진 생물보다 단단한 외골격이 있는 동물은 화석으로 보존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또한 삼엽충은 성장하면서 외골격을 벗는 탈피를 했기 때문에 실제 개체 수보다 더 많은 외골격 흔적이 퇴적물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삼엽충은 고생대 지층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화석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2억 7천만 년을 살아남은 성공적인 생물
삼엽충은 멸종했다는 사실 때문에 실패한 생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 생명의 역사를 보면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삼엽충은 약 2억 7천만 년 동안 존재하면서 약 2만 2천 종 이상의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캄브리아기 말의 멸종 사건도 견뎠고, 오르도비스기 대멸종도 살아남았습니다.
데본기의 여러 환경 변화 역시 일부 계통이 버텼습니다.
결국 지구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페름기 말 대멸종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 정도라면 삼엽충은 실패한 동물이 아니라 고생대 바다에서 가장 성공적인 동물 집단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
삼엽충이 멸종한 이유를 하나의 사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삼엽충은 약 5억 2천만 년 전 등장한 뒤 수억 년 동안 여러 차례의 환경 변화와 대멸종을 견뎠습니다.
그러나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데본기의 멸종 사건을 거치면서 다양성이 점차 감소했고 새로운 포식자의 등장과 해양 생태계 변화 역시 장기적인 쇠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페름기에는 이미 소수의 계통만 살아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약 2억 5,200만 년 전 시베리아의 대규모 화산활동과 연결된 급격한 지구 온난화와 해양 환경 변화가 발생하면서 마지막 삼엽충까지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삼엽충의 멸종은 ‘한 번의 재난으로 갑자기 사라진 사건’이라기보다 약 1억 년 이상 이어진 장기적인 쇠퇴의 마지막 단계에서 지구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멸종을 맞은 결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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